뉴질랜드는 자연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장대한 풍경과 맑은 공기를 자랑하지만, 그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작고 조용한 소도시들의 매력이 은은하게 다가옵니다. 크라이스트처치, 퀸스타운처럼 널리 알려진 도시들 너머에는 작은 항구 마을, 예술가들의 공동체,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타운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곳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뉴질랜드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질랜드를 더 깊고 감성적으로 만날 수 있는 소도시 세 곳을 소개합니다. 조용한 카페, 마을의 오래된 서점, 정류장 없는 시외버스, 그리고 낯선 골목에서 만난 여유로운 하루. 그 모든 것이 감성이 되어 기억에 남는 소도시 여행을 함께 떠나볼까요?
1. 애로우타운(Arrowtown) – 골드러시의 향수를 간직한 마을
퀸스타운에서 차로 불과 20분 거리에 위치한 애로우타운은 뉴질랜드의 과거, 특히 19세기 골드러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작은 마을입니다. 한적한 산속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크지 않지만, 거리 하나하나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정감 넘칩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메인 스트리트에는 돌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카페 하나에 앉아 있으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가을에는 도시 전체가 노란빛 단풍으로 물들며,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명소로도 손꼽힙니다. 실제로 매년 열리는 ‘애로우타운 가을 축제’는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인기 있는 지역 행사로, 재래시장, 거리 공연, 전통 음식 부스 등으로 마을 전체가 활기차게 변합니다.
또한 애로우강(Arrow River) 인근에는 짧은 하이킹 코스가 잘 조성돼 있어, 천천히 걷기에도 좋습니다. 사람 없는 강변에 혼자 앉아 있노라면,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고요함이 마음을 감싸죠. 작은 갤러리,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 빈티지 서점 같은 공간들도 이 마을의 매력을 더해줍니다. 하루 혹은 반나절 머물기에도 충분하지만, 만약 머물 수 있다면 별이 가득한 밤하늘까지 감상할 수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2. 아카로아(Akaroa) – 프랑스의 흔적이 남은 항구 마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약 1시간 반 거리, 반도 끝자락에 자리 잡은 아카로아(Akaroa)는 뉴질랜드 속 작은 프랑스라 불립니다. 19세기 프랑스 정착민들이 건설한 이 마을은 지금도 거리명, 건물 스타일, 식당 이름 등에서 프렌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카로아의 중심은 아기자기한 항구입니다. 부두에서는 돌고래 투어나 카약, 요트 체험이 가능하고, 해가 질 무렵이면 수평선에 물드는 석양이 로맨틱하게 마을 전체를 감쌉니다. 작은 마을이지만 카페, 베이커리, 와이너리, 정원 등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특히 ‘더 리틀 프렌치 카페(The Little French Café)’ 같은 현지인 추천 장소에서는 갓 구운 크로와상과 프렌치 스타일 브런치를 맛볼 수 있고, 작은 서점과 아트 갤러리에서는 이 지역 예술가들의 감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카로아는 또한 자연과 가까운 마을입니다. 주변 언덕으로 난 하이킹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바다와 들판이 만나는 뉴질랜드 특유의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도시보다 느리게, 사람보다 풍경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이곳은 혼자 여행하는 이들에게 특히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계획 없이 그냥 걷다가, 풍경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여행의 목적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 해스티(Haast) – 야생과 고요가 공존하는 남섬의 끝자락
해스티(Haast)는 뉴질랜드 남섬 서해안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인구도 적고, 가게도 몇 개밖에 없지만, 이곳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보석 같은 공간입니다. 서해안을 따라 달리다 보면 수많은 폭포와 해변, 숲길이 이어지는데, 그 중심이 바로 해스티입니다. 세계유산 지역인 ‘웨스트랜드 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돼 있어,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해스티를 베이스로 하면 ‘해스트 패스(Haast Pass)’ 드라이브 코스와 ‘블루 풀스(Blue Pools)’ 트레킹 코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블루 풀스는 이름 그대로 에메랄드빛 물이 맑게 흐르는 계곡으로, 짧은 숲길을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면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또한 근처 해변에서는 펭귄이나 물개 같은 야생동물도 만나볼 수 있고, 일몰 무렵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성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됩니다. 해스티에는 별다른 관광지도, 대형 숙소도 없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곳의 매력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 그냥 자연 속에 머물며 자신과 조용히 대화하는 여행, 해스티는 그런 여정을 원하는 이들에게 가장 완벽한 목적지입니다.
뉴질랜드의 소도시 여행은 크고 화려한 관광지에서 얻을 수 없는, 작고 조용한 감동을 줍니다. 애로우타운의 단풍, 아카로아의 프랑스풍 골목, 해스티의 야생 바다, 그 어느 곳도 이름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게 됩니다. 빠르게 달리는 여행이 지쳤다면, 작은 마을에 멈춰서 천천히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익숙하지 않은 정류장, 조용한 카페, 마을 주민의 인사 한 마디와 같은 그런 순간이 쌓여 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소도시에서의 하루는 아주 특별한 감성으로 기억됩니다. 뉴질랜드를 ‘조금 더 깊이’ 여행하고 싶다면, 이 작은 도시들에서 그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