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걷는 재미도, 먹는 즐거움도 넘치는 나라지만, 도시 간 이동 역시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특히 기차 여행이 잘 발달한 이탈리아에서는 유레일(Eurail) 패스를 이용하면 효율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여행이 가능합니다. 유레일은 유럽의 다양한 나라를 열차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글로벌 패스로, 이탈리아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이탈리아 패스'도 따로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풍경을 감상하고, 피곤할 틈 없이 다음 여정을 맞이하는 그 리듬은 항공이나 차량 이동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레일로 떠나는 이탈리아 기차 여행의 핵심 루트와 각 도시의 매력을 연결해 소개합니다. '효율적인 이동'을 넘어 '기차 위의 감성'까지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1. 로마 → 피렌체 → 베네치아 : 예술과 감성의 클래식 루트
이 루트는 유레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입니다. 수도 로마에서 출발해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그리고 수상 도시 베네치아까지 이어지는 이 여행은 고대, 예술, 낭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완벽한 여정입니다.
로마에서 피렌체까지는 고속열차(프레차로사 또는 이탈로)를 타면 약 1시간 30분이면 도착합니다. 로마 테르미니(Termini) 역은 규모가 커도 친절한 안내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유레일 이용자도 어렵지 않게 탑승할 수 있습니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며 두오모 전망을 감상했던 피렌체에서 벗어나, 물결 위에 건축된 베네치아 산타루치아(Santa Lucia) 역에 도착하는 순간의 감동은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이 루트의 가장 큰 장점은 각 도시가 모두 기차역과 중심지가 가깝다는 점입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도시 탐험이 가능하니 이동 시간도 절약되고 여행이 훨씬 여유롭습니다.
2. 밀라노 → 베로나 → 볼로냐 → 피렌체 : 북부 도시 감성 루트
패션과 예술, 맛과 감성이 어우러진 이탈리아 북부는 기차로 이동하기에 특히 좋습니다. 도시 간 거리가 짧고 고속열차뿐만 아니라 지역열차도 잘 연결돼 있어 자유여행자에게 딱입니다. 밀라노에서 시작해 베로나, 볼로냐를 거쳐 피렌체로 내려가는 이 루트는 각 도시의 개성이 선명합니다. 밀라노는 현대적인 감각과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로, 포르타 누오바 지역이나 브레라 거리 같은 신·구가 어우러진 공간이 매력적입니다.
밀라노에서 베로나는 약 1시간 20분 소요됩니다.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로맨틱한 도시로, 걷는 동안 골목 곳곳에서 중세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로나 아레나에서는 여름마다 오페라가 열리기도 합니다.
그다음으로 볼로냐는 베로나에서 약 50분 거리로, 미식의 도시로 불릴 만큼 먹거리 천국입니다. 붉은 벽돌 건물이 인상적인 도시로, 아케이드(포르티코) 아래를 걸으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에 제격입니다.
마지막 도착지 피렌체, 이 루트는 도시마다 하루나 이틀씩 여유를 두고 천천히 이동하기 좋으며, 열차 이동 중 창밖으로 펼쳐지는 포도밭과 언덕 풍경은 자연스럽게 감성을 자극합니다.
3. 로마 → 나폴리 → 아말피 → 살레르노 : 남부 풍경과 바다 루트
이탈리아의 남부는 북부와는 또 다른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더 투박하고, 더 생생하고, 바다와 햇빛이 넘치는 루트입니다. 유레일을 이용해 로마에서 나폴리, 그리고 아말피 해안으로 향하는 여정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풍경을 품은 여행 그 자체입니다.
로마에서 나폴리까지는 고속열차로 약 1시간 10분이면 도착합니다. 짧지만 가장 변화가 극적인 구간 중 하나입니다. 로마의 고전적인 분위기에서, 나폴리의 활기 넘치는 시장과 거리로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기운이 확 달라집니다.
나폴리에서 아말피 해안까지는 기차에서 버스 또는 페리로 갈아타야 합니다. 유레일 패스는 살레르노까지 커버되며, 살레르노에서 아말피, 포지타노 같은 해안 도시까지는 연결 교통편을 이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편함보다 감동이 더 큽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와 바다의 풍경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유레일 여행자라면 나폴리에서 살레르노까지 기차를 탄 후, 당일치기나 1박 2일 일정으로 아말피를 들러보는 루트를 추천드립니다. 또한 나폴리에서는 폼페이 유적지, 소렌토, 카프리 섬 등 다양한 당일 코스를 기차와 페리로 연결할 수 있어 기차 여행의 자유도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유레일로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는 건, 단순한 교통 수단을 넘어선 경험입니다. 기차를 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동안, 책을 읽고 창밖을 바라보고, 가끔은 그 지역 사람과 나란히 앉아 조용한 시간을 공유하게 됩니다. 빠르게 이동할 수도 있고, 천천히 돌아볼 수도 있는 기차 여행의 매력은 유레일 패스 덕분에 더욱 커집니다. 특히 이탈리아는 대도시 간 고속열차망이 잘 되어 있어 짧은 일정에서도 많은 곳을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최고의 나라 중 하나입니다. 루트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시 하나하나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 1박 이상 확보하고 여유롭게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입니다. 피곤함 없이 풍경과 감정을 함께 옮겨가는 여행, 유레일로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음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비행기 대신 유레일 티켓 한 장 들고, 레일 위의 감성을 따라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기차가 도착하는 도시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